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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도 이런곳이!

문화예술·건축물의 미학

by 포근한 사람 2016. 7. 3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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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구립도서관




서울시 은평구 불광2동 59-32


                    

 

               


       

 


은평구립도서관

한 편의 ‘시(時)적 은유’다. 응석대에 앉아 서산의 노을을 마주해보라. 이 또한 소박한 표현이라는 걸 안다. 은평구립도서관은 도서관의 틀을 깬다. 독서하고 사유하고 산책하며 음미한다. 마음으로 읽는 거대한 책이다. 한 편의 예술이다. 천천히 탐독할 만하다.

도서관에서 나들이를, 데이트를

우선 거창한 말 한마디 응용하자. 노여워 마시길. 괴테는 ‘건축은 얼어붙은 음악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또 소박한 말 한마디도 빌려오자. 빌 게이츠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 도서관이었다’고 말했다. 말을 꺼내고도 ‘동네 도서관’에 이 무슨 야단법석인가 싶다. 문학과 공학의 두 천재의 말까지 끌어와서 말이다. 그런데 은평구립도서관은 그럴 만하다. 직접 마주하면 이해가 간다.

은평구립도서관은 도서관의 새로운 모델이다. 단숨에 시선을 압도하는 빼어난 건축물이다. 도서관에 온 원래 목적마저 잊게 할 만큼 멋스럽다. 그럼에도 책이 사는 집의 역할에 충실하다. 책을 만나는 장소로 적합하다. 사색의 여유도 안긴다. 인공의 건축 안에 자연이 숨을 쉬는 덕이다. 겉만 멀쩡하지도 않다. 운영도 실속 있다. 공공의 책 터로서 책 읽는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굳이 은평구에만 한정지을 까닭도 없다. 전국에서 손꼽힌다.

도서관의 고정관념도 깬다. 고전적 도서관의 반대편에서 매혹한다. 세련됐지만 가볍지 않다. 웅장하지만 무겁지 않다. 왜 가족의 나들이는 늘 공원이고, 친구와의 약속은 카페고, 연인들의 데이트는 미술관이어야만 할까. 은평구립도서관은 서울의 명소로도 손색이 없다. 무엇보다 책과 함께하는 즐거움이라니. 산책하듯 거닐다 노을을 바라보고 나란히 앉아 고소한 책장의 냄새에 빠져들어도 좋겠다. 미리 알고 떠나면 소소한 요소들이 갖는 깊은 의미도 찾아낼 수 있겠지.

은평구립도서관은 연신내역에서 출발한다. 골목으로 접어들어 산자락을 향한다. 찾기 쉬운 길은 아니다. 그런데 또 찾기 쉬운 길이기도 하다. 꼭 집어 말할 ‘정문’이 없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진입로가 다양하다. 위치는 불광근린공원의 서편 자락이다. 함박꽃나무나 능수벚나무 같은 희귀한 수종이 많은 99미터 산의 기슭이다. 그러니 또 연신 오르막이다. 주택가 사이로 구불구불한 길을 더듬는다. 오르고 오르면 못 오를 리 없으니 동네 뒷산을 향해 걷다보면 만날 수 있다. 독서의 과정인 양하다.

산기슭의 콘크리트 망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할 때쯤 노출콘크리트 건물이 나타난다. 장방형의 망루 같은 상자의 집합이다. 경사지를 따라 삐쭉삐쭉하다. 그 맵시가 범상치 않다. 어렴풋이 근래에 생긴 도서관이려니 한다. 하지만 10년 전에 지어졌다. 1998년 현상공모를 했고 2001년에 완공했다. 10년이 지나도 그 멋을 잃지 않았다. 또 10년이 지나도 마찬가지겠지. 설계는 건축가 곽재환(맥건축)이 맡았다.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을 만든 이다.

은평구립도서관의 부지에는 두 가지 큰 제약이 있었다. 산기슭이었다. 그리고 정면이 서쪽을 향했다. 그냥 건축물이 아니다. 공공성을 가진 공간이다. 하물며 도서관이다. 책을 읽기에도 책을 보관하기에도 불편한 요소가 많다. 그는 이 두 가지 악조건을 도서관의 장점으로 승화시켰다. 완공한 은평구립도서관은 서쪽을 향한 산기슭의 건물이라 더욱 탐스럽다. 여느 도서관이 갖지 못하는 장점이 생겨났다. 높은 곳에 있지만 찾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제일 아래쪽에는 주차장이다. 길은 단숨에 열리지 않는다. 콘크리트벽을 마주하고 옆의 계단이다. 그리고 국기 게양대다. 설계 상에는 측면의 한쪽에 위치했다지. 일말의 아쉬움이다. 올라설 때는 소나무가 가지를 드리우고 눈을 맞춘다. 소소한 숨결이다. 물론 주변의 주택단지에서 측면으로 곧장 스며드는 길도 있다. 계단을 지나 비로소 도서관과 마주한다. 그렇다고 또 곧장 길이 열리지 않는다. 이번에는 다섯 개의 기둥이 막아선다. 덩굴이 휘감아 오른다. 기둥은 도서관의 정문을 대신하는 표석이다. 그리고 일종의 솟대다. 각각 살다(生), 알다(知), 놀다(戱), 풀다(業), 빌다(祈)의 의미를 담았다.

서향의 단점을 노을의 장점으로

솟대 너머에는 성곽 같은 건축이다. 피라미드 형태의 사선 유리 위로 노출 콘크리트 구조물 두 개가 중심을 이룬다. 그리고 이를 기준으로 좌우에는 응석대(凝夕臺)라 불리는 장방형의 콘크리트 상자가 줄지어 선다. 전체는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다. 다만 단일 건물의 3층과는 다르다. 각 층의 건물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듯 자리 잡았다. 각 층마다에는 좌우에 각 네 개씩 총 여덟 개의 응석대다. 총 스물네 개의 응석대가 계단처럼 올라간다. 그러므로 경사지를 거스르지 않는다. 불광근린공원을 이루는 산세와 자연스레 어울린다. 산의 일부로 스며들어 풍경의 일부로 녹아든다. 여덟 개씩 세 번으로 나뉘어진 응석대의 리듬이 철옹성의 분위기도 상쇄한다.

응석대는 그저 경사지를 활용한 건축물에 그치지 않는다. 서향의 단점을 극복해낸 수단이다. 우선 개개의 응석대에는 창이 없다. 대신 상단부와 하단부를 열린 구조로 설계했다. 하단부는 아케이드 형식이다. 통로가 났고 통로와 접한 안쪽 면에 건물의 창이 났다. 자연스레 차양 역할을 한다. 실내로 스며드는 햇볕은 차단하지만 시야는 열렸다. 상단부는 야외 테라스 구조다. 1층의 상단(옥상)부가 2층의 옥외 공간과 이어진다. 상단부는 박스형의 쉼터다. 세 면이 창틀 형식으로 열렸다. 저녁 무렵에는 조망과 사색의 공간으로 변신한다. 공간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응석대라는 이름에 그 뜻이 잘 드러난다. 응(凝)은 ‘막다’와 ‘머물다’는 뜻이 있다. 저녁의 석양빛을 막는 동시에 노을을 조망하게 한다. 은평구에서 손꼽히는 비경이다. 그러므로 서향이 갖는 단점은 도서관의 가장 큰 장점이 된다. 또한 건물은 전면부와 달리 측면에는 넉넉한 창을 두어 공간의 갑갑함도 피했다.

빛으로 읽는 물의 언어

현관 안쪽에도 비밀스런 공간이 숨었다. 입구의 피라미드형 유리 천장으로 들어서면 반영정(反影井)에 이른다. 그림자를 비춰보는 우물이다. 건물의 중심점이다. 중정이다. 지상까지 열린 아트리움이다. 정면을 제외하고는 콘크리트다. 벽마다에는 모자이크처럼 사각형의 작은 쪽창이 뚫렸다. 하지만 공간은 텅 비어 있다. 우물의 바닥이다. 잔잔한 물결이다. 지하 1층에서 스멀스멀 담쟁이 정도가 피어오른다. 1층의 입구에서와 2층의 옥외에서 바라볼 때 느낌이 다르다. 은평구립도서관은 전체적으로 빛을 막아서는 건축이지만 반영정만은 정오의 빛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빛이 물의 언어를 읽는다. 시(詩)적 은유다. 그 역설이 또한 의미심장하다. 그 이름처럼 성스럽다.

마지막으로 매혹적인 것은 석교(石橋)다. 지형과 일체를 이루는 은평구립도서관의 방점이다. 석교는 3층 옥상에 있다. 중심축과 이어진다. 저녁의 낙조를 가장 명징하게 품는 자리다. 그 축 상에서 뒤쪽 산인 불광근린공원으로 다리가 난다. 이동의 통로에 그치지 않는다. 건축과 자연을 잇는 가교다. 경사면을 따라 계단식으로 쌓아온 건축물은 석교를 통해 인근의 야산과 혼연일체를 이룬다. 경계를 지워낸다. 아쉽게도 현실적인 여건 상 석교는 문을 닫아두고 있다. 한때는 응석대도 닫혀 있었다. 지나친 유흥의 장으로 변질됐던 까닭이다. 지금은 응석대만 개방한다.

은평구립도서관은 단순히 외관의 아름다움이 전부가 아니다. 운영의 묘도 장점이다. 사회복지법인 인덕원에서 수탁 운영하는데 찾아가는 서비스나 테마 프로그램 등의 호응이 좋다. 각종 수상을 기록했다. 안팎으로 꽉 찼다. 그러므로 동네 도서관이지만 동네 도서관을 넘어선다. 책과 건축 그리고 ‘내 마음’까지, 읽을 것이 참 많다. 서울의 명소로 손꼽는 이유다. 이만 하면 괜스런 거들먹거림도 아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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