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가 경제에 치명타
가계 빚 1300조.. 빚 갚느라 지갑 닫으면, 경제에 주름살
[급증한 가계 부채의 위험성]
- 은행들 외환 위기 후 가계 대출 늘려
부동산 호황기 거치며 투자 바람.. 부채, 2002년보다 3배 가까이 급증
- 2011년, 부채 증가율 > 소득 증가율
소득 대부분 빚 갚는 데 쓰게 돼.. 소비 줄어들고 경제 활력 떨어져
기업 투자 부진 이어지는 '악순환'
- 부채 늘어나는 속도 줄이려면..
美·유럽보다 중·고령층 부채 많아.. 원금·이자 동시에 갚게 하는 등
은퇴 전 청산하도록 유도하고 주택연금 활성화로 부담 낮춰야
'1300조 가계 부채 폭탄 터지나?'
최근 들어 이런 제목의 뉴스들이 자주 보입니다. 작년 말 기준 우리나라 가계 부채가 1300조원에 육박했고, 이 문제가 우리 경제를 위협할 정도로 심각하다는 내용입니다. 1300조원은 2015년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약 83%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입니다. 우리나라 국민이 보유하고 있는 가계 부채를 모두 갚기 위해서는 국민이 1년 동안 생산한 재화의 83%를 오로지 빚을 갚는 데만 써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가계 부채 문제는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요. 그리고 가계 부채가 늘어나는 것이 왜 우리 경제를 위협할 만큼 심각한 문제가 됐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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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 위기 이후 가계 부채 급증
우리나라 가계 부채는 2000년대 초반쯤부터 늘어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90년대 후반 외환 위기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된 후부터 증가한 거죠. 외환 위기 이전에는 시중은행들이 가계에 돈을 빌려주기보다는 기업에 돈을 빌려주고 수익을 냈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은행들은 기업 대신 상대적으로 돈을 떼일 위험이 낮은 가계 대출을 늘렸습니다.
하지만 2003년 신용 불량자를 다수 만든 이른바 '신용카드 대란'이 터졌고, 주거비·교육비 부담도 크게 늘면서 가계 부채가 급속하게 늘었습니다. 부동산 투자도 영향을 줬습니다. 2000년대에는 전반적으로 부동산 경기가 좋았기 때문에 빚을 내더라도 집을 구입하면 몇 년 후 집값이 올라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았던 거죠.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2년 4분기 말 기준 우리나라 전체 가계 부채는 약 465조원이었는데, 작년 말 약 1300조원으로 14년 만에 3배 가까이로 빠르게 늘었습니다.
물론 가계 부채가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막 취업을 한 30세 A씨의 사례를 보죠. 그는 여자 친구와 결혼을 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겨우 취업의 문턱을 넘은 터라 당장 신혼집 마련 등 각종 결혼 비용이 없습니다. 결국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로 했습니다. 현재 소득은 낮지만 A씨는 향후 열심히 일을 해 월급이 오를 것을 기대하면서 미래 소득을 미리 당겨 쓴 거죠. 대출을 받았기 때문에 A씨는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는 경제적인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가계 부채는 당장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의 숨통을 틔워주는 효과도 있습니다.
◇가계 부채가 경제 활력 떨어뜨려
그렇다면 왜 많은 사람이 현재 우리나라 가계 부채가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일까요? 일반적으로 가계 부채가 많은 사람은 자신이 벌어들인 소득의 상당 부분을 빚을 갚는 데 씁니다. 매달 주어진 월급에서 빚을 갚는 데 쓰는 돈이 많다면 소비를 하는 데 쓰는 돈은 줄 수밖에 없습니다. 소비가 줄어들면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고 기업의 투자 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경제성장률도 낮아질 수 있죠.
우리나라는 2011년 이후 가계 부채 증가율이 가계소득 증가율을 웃돌고 있습니다. 즉, 가계소득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빚이 늘어나는 속도가 빠르다는 의미입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가계 부채 증가율과 소득 증가율의 격차가 최근 들어 더욱 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금리·대출 규제 완화가 원인
소득보다 과도하게 빚이 많은 사람(과다 채무자)과 은행·저축은행·보험회사 등 여러 금융회사에서 동시에 돈을 빌려 쓰고 있는 사람(다중 채무자)의 수도 늘고 있습니다. 향후 우리 경제가 큰 충격을 받으면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이 크게 늘어난다는 뜻입니다.
저금리와 대출 규제 완화가 주된 원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선 대출 금리가 낮으면 매달 갚아야 하는 이자 비용도 크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좀 더 수월하게 돈을 빌려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향후 대출 금리가 상승하고 우리나라 경기가 악화되어 가계의 소득이 낮아질 경우 가계 부채를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큽니다.
상대적으로 소득과 자산이 적은 사람도 돈을 빌려 쓰기 수월한 환경도 가계 부채가 늘어나는 데 영향을 줬습니다. 2014년 8월 정부가 부동산 대출 관련 규제인 총부채상환비율(DTI)과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완화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DTI는 연간 가계 수입 중에서 갚아나가는 상환금이 차지하는 비중을 뜻합니다. LTV는 담보로 잡은 집값 중 대출액이 차지하는 비율입니다. 저금리에 규제까지 완화되면서 많은 사람이 빚을 내서 집을 사고 부동산 투자를 했습니다. 부동산 및 건설 경기가 크게 개선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지만 가계 부채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부작용도 생겼습니다.
또 연령대별로 가계 부채 문제를 살펴보았을 때 우리나라는 미국·유럽의 주요 국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중·고령층이 보유하고 있는 가계 부채가 많은 편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고령층은 안정적으로 연금을 받는 경우가 많아 은퇴를 하더라도 가계소득의 하락 폭이 크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고령층은 은퇴 후 가계소득이 낮아지는 경우가 많아 자기의 소득으로 가계 부채를 갚기가 쉽지 않습니다.
◇원금·이자 동시에 갚게 유도해야
가계 부채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우선 부채가 늘어나는 속도를 줄여야 합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과거 수준의 규제를 다시 도입해 대출을 좀 더 까다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또 대출을 받은 사람들이 부채의 원금과 이자를 동시에 갚게 유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가계 대출을 받은 직후부터 3~5년 정도는 이자만 내고 부채의 원금은 갚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대출 직후부터 이자를 포함해 부채의 원금도 함께 갚게 만들어 대출을 받은 사람이 은퇴하기 전에 자기 부채를 모두 상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고령층의 가계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주택연금제도를 지금보다 활성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택연금은 살고 있는 집을 담보로 주택금융공사에서 연금을 받는 것입니다. 예상보다 빨리 사망할 경우엔 주택 가치에서 이미 받아간 연금을 뺀 나머지를 상속자에게 돌려줍니다.
우리나라 고령층은 소득이 낮은 반면 자산 대부분이 부동산인 경우가 많습니다. 부채를 갚으려면 집을 팔아야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뜻입니다. 빚을 갚으려고 자기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판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닙니다. 하지만 주택연금제도를 이용하면 소득이 생겨 살던 집을 팔지 않고도 부채를 줄일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